게임은 주인공이 있는 실루엣과 그 뒤쪽으로 황혼에 물든 도시를 보여주면서 시작됩니다. 그 위로 마치 불꽃 모양의 글자모양으로 게임의 제목인 Braid가 나타나죠. 옆으로 이동하면 7개의 별이 보이고, 더 옆으로 이동하면 화장실을 포함한 6개의 방이 있는 집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World 2라는 방의 불이 켜져 있죠. 사다리는 위쪽으로 이어져 다락방으로 향하는데, 중간에 사다리가 끊어져 있어 처음에는 다락방에 가지 못합니다. 예, 이 사다리는 각 월드에 배치되어 있는 퍼즐을 풀면 한칸씩 연결됩니다. 그렇게 5개의 월드에 있는 퍼즐을 풀어 마지막 다락방으로 가는 것이죠.
그럼 게임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니, 표면적으로는 공주를 구하는 것입니다. 월드 2를 시작할 때 나오는 설명을 참고하면, 주인공인 팀(Tim)은 어떤 실수를 저질렀고, 그것으로 인해 공주가 사악한 괴물에게 납치된 것입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계속해서 설명을 읽어보면 공주가 납치된 것이 아니라, 왠지 팀의 실수에 의해서 떠나간 것처럼 나오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해서 공주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납니다. 월드 2에서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퍼즐을 푸는 것으로 게임에 익숙해지게끔 만들어줍니다. 여기서는 주로 몬스터를 비롯한 주위의 사물(심지어는 퍼즐까지)을 이용해 퍼즐을 얻어내는 방법을 익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렇게 월드의 끝으로 향하면 성에 도착하고, 성앞에 있는 깃발을 내리면 공룡이 마중나와 공주의 행방을 알려줍니다. 이 장면은 슈퍼마리오의 그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이런 식으로 월드가 거듭되면서 퍼즐은 더욱 풀기도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이후에 별의 존재에 대해 알아차리게 된다면, 더욱 더 각 레벨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디자인 되었는지도 깨닫게 되죠. 각 레벨에 있는 물체 하나 하나가 쓸데없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든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늘에 미동조차 안하는 것 같은, 하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는 구름과 같은 것들까지도 말이죠. 이야기도 더욱 그 의미를 알아차리기 힘들어 집니다. 단순히 납치된 공주를 찾아 떠나는 것 같지만, 팀이 분명히 공주에게 뭔가를 잘못했고, 그것으로 인해서 팀이 공주를 버리고 떠났으며, 이를 되돌리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각 월드의 끝에 있는 성에 도착할 때마다 모양과 색이 바뀌는 깃발들, 그리고 공주의 존재와 정체에 대한 애매모호한 공룡의 대사들이 게임을 진행할수록 뭔가 알 수 없는 혼돈을 주기 시작합니다.
게임의 끝으로 갈수록 게임은 점점 더 뒤틀립니다. 공주는 팀의 연인이 아니었으며, 팀은 공주를 찾기 위해서 진짜 연인도 버려두고 모험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팀이 도착하는 성에는 가끔 공주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성은 무너져 있었고, 심지어는 공룡마저도 공주가 과연 존재하는지를 되묻습니다. 그렇게 마지막 퍼즐을 맞춰 사다리를 완전히 연결하게 되면 다락방으로 갈 수 있게 되고, 비로소 이야기의 첫번째 시작점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주를 찾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행해진 결과에 대한 암시가 서서히 나타나게 됩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돌아가는 월드. 그곳에서 팀은 사악한 괴물(기사?)에게 쫓기는 공주를 발견하고, 기사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팀과 공주가 서로 도와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공주를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지만...
이 세계는 모든 시간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에 이 모든 순간의 시간을 되돌리는 장면에서 첫번째 충격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여지껏 팀이 공주를 구하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사실은 팀이 공주를 붙잡기 위해서 그녀를 쫓아왔던 악당이었던 것이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에필로그에 와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이 에필로그에 두번째 충격이 드러납니다. 아직까지 이야기가 뒤죽박죽 엉켜있는 것 같지만, 이 흩어진 이야기들을 맞추어 팀에게 있었던 진짜 일을 알아내는 것이 이 에필로그의 퍼즐이 되는 것입니다. 에필로그의 퍼즐들을 풀어나가는 가운데 점점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야기...맨해튼, 그리고 꼭 한번은 들어봤을 만한 익숙한 장면들과 대사... 그것은 바로 원자폭탄 개발에 관한 이야기었던 것입니다. 즉, 팀은 원자폭탄을 개발하던 과학자였고, 공주는 그가 추구하는 것, 즉 원자폭탄 자체를 의미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팀이 도착한 성은 지금까지 팀이 거쳐왔던 세계로 쌓아올린 성이며, 이는 파괴된 문명의 재건을 의미한다고도 합니다. 그곳을 나오면 다시 게임을 시작했던 처음 장면으로 돌아오면, 마치 황혼에 덮였던 도시인줄 알았던 곳이 사실은 핵폭발의 화염에 휩싸인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팀의 모험...
이것은 별을 모으지 않았던 상황에서의 엔딩에서 알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과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결말을 체험하게 되면 그때부터 게임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플레이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팀이 했던 실수는 아마도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이를 후회하고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게임이 마치 고리처럼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있겠더군요. 그리고 각 월드의 끝에 있던 깃발입니다. 그 깃발들은 해양 선박들이 사용하는 신호기로 각 깃발마다 해당되는 알파벳과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World 2 : N - "NO."
World 3 : U - "You are running into danger."
World 4 : L - "You should stop your vessel instantly."
World 5 : X - "Stop carrying out your intentions and watch for my signals."
World 6 : K - "I wish to comunicate with you."
즉, 깃발들은 팀이 공주를 찾는 것을 막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경고해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공주의 그림이 그려져 있던 성은 파괴되어 있었고, 이는 공주가 그리 좋은 대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해 줬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월드의 눈도 사실은 눈이 아니라 방사능 낙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 하네요. 그리고, 공주의 방 입구에 있는 우체통에 적힌 숫자하며, 방안에 걸려 있는 모나리자 사진이라든지, 지금이라도 인터넷을 통해서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별을 모았을 때의 엔딩은 여기서 뭐가 달라지는가 확인해봤습니다. 사실,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만, 이때서야 이 게임이 하고자 하는 말이 더욱 명확해지더군요. 7개의 별을 모두 모으게 되면, 그 전에는 잡을 수 없었던 공주를 잡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팀이 공주를 잡게 되면, 공주가 작동(?)하게 되고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폭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음에 7개의 별이 떠 있던 자리에 공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손목이 쇠사슬에 묶인 상태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인지라 또 충격입니다. 결국 이것으로 공주는 절대로 팀의 행복이 아닌, 한 도시를 불태워 버리는 모든 이들의 불행인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이 게임이 뭔가 이렇게까지 화자화 될만한 것을 갖추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그럴수도 있습니다. 특히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것들을 탐구하는 과학자들이 가져야할 도덕성이나 윤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빗대어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과연 지구 위에서 인류를 파멸시킬만한 가공할 무기를 만들었던 그들이 단지 지식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는 것으로 그 행위를 합리화 할 수 있을까 말이죠. 그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지 자신들도 몰랐다는 것으로 용서가 될까요?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로 후회한다고 한들, 그들은 또 다시, 또 다른 공주를 찾기 위해서 연구를 시작할 것입니다. 유전자 조작, 인공 블랙홀 연구 등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그들의 연구가 또 다른 공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없지 않죠. 끊임없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열망과 집착으로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치 게임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되는 것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퍼즐을 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까지 생각하다가 보니 아차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퍼즐을 푸는 듯 싶었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야할지 고민해가면서 저 물체가 왜 저 자리에 저렇게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기를 쓰고 퍼즐을 풉니다. 깃발이 경고를 하고 내가 찾아야 하는 공주가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저는 끝을 봐야만 했죠. 그렇게 해서 결국 만나게 된 결말은 충격 그 자체였지만, 또 다른 엔딩을 위해서 단순히 퍼즐을 맞추는 것 이상의 '짓'을 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별을 모으기 위해서 2시간 동안 구름 위에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별을 얻을 수가 없다며 매번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를 하면서 수없이 많은 시간을 되돌리고 있었죠. 숨겨져 있던 수많은 사물들의 의미에 집착하게 되면서, 마지막 성 앞에 오르게 되는 녹색 깃발과 두겹으로 겹친 구름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죠. 결국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공주를 찾아 붙잡았지만, 그 결과는 처음보다 더욱 못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게임을 하면서 무서운 느낌이 드는 것은 화이트데이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종류의 무서움, 그것은 게임을 하는 내 모습이 마치 팀과 닮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퍼즐을 맞추고 별을 모으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엔딩을 봐야만 한다는 집착, 그 결과가 기분이 더럽고 충격적이고, 나에게 별 이득이 없다고 하더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는 그 집착은, 세상이 불타버려도 공주를 찾고 말겠다는 팀의 집착과 다를 바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원하는 것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경고를 달게 받았다면 좋은 결과가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저는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이었죠. 마치 팀처럼 말이죠. 결국 그 집착은 후회를 낳게 되고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들기도 했으니, 딱 팀의 상황과 맞아 떨어지더군요. 이쯤되니 세번째 충격을 받게 되더군요.
비록 충격을 많이 받기는 했지만, 여러모로 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 게임입니다. 이러한 점이 이 게임에 대한 평점을 높게 줄 수밖에 없는 요소가 아닌가 싶네요. Planescape: Torment와 함께 꽤 완소하게 될 게임이 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2차원 횡스크롤 퍼즐 게임으로 이 정도의 스토리 텔링을 구현해 낼 수 있었다는게 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은 마치 아무리 후회를 해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드는 인간의 집착, 그 집착을 뿌리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만, 사실 느끼는 것은 개개인이 다 다르겠죠. 플레이어들 간에 많은 토론이 오고가는 게임이니 만큼 많은 견해가 있을 수 있으니, 한번 직접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게임을 하기 전에 게임의 리뷰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 경고를 일찌감치 받아들이고 별을 모으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는 않으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ㅎㅎ
@ 엔딩 크레딧에서 등장하는 Brian Moriaty의 이름. Loom을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꽤 반갑다.
@ 역시 엔딩 크레딧에서, 시 한편이 등장한다. Christina Rossetti의 'Who has seen the wind?'라는 제목의 시인데, 원문은 아래와 같다.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I nor You:
But when the leaves hang trembling
The wind is passing thro'.
Who has seen the wind?
Neither you nor I:
But when the trees bow down their heads
The wind is passing by.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크레딧 처음에는 이 시의 2연이 먼저 등장한다. 그리고 크레딧이 끝나는 마지막에 1연이 등장하는데, 행이 거꾸로 적혀 있다.
'누가 바람의 모습을 보았나요?
당신도 나도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나무가 고개를 숙일 때
그 곁으로 바람이 지나고 있지요.
그 사이로 바람이 지나고 있지요.
하지만 나뭇잎 살랑거릴 때
나도 당신도 보지 못했어요.
누가 바람의 모습을 보았나요?'
이 시와 게임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시 한편을 새롭게 보게 만들어 준 제작자의 머리 속을 한번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